리움 미술관 마지막 소개입니다.
지난 리움미술관 주차장 및 무료주차소개와 M1 상설전시실 3층과 4층에 이어 국보급 서화와 불고미술, 공예품을 만나불 수 있는 2층과 1층 전시장 소개입니다.
| 리움 미술관 고미술 상설 전시
리움미술관에는 선대 회장님이신 이병철 회장님이 수집해온 우리나라의 국보급 문화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M1 전시관에 상설전시되어 있으며, 관람료는 무료입니다. 또한, 리움미술관 홈페이지 예약을 통해 관람이 가능하지만, 통상 예약 없이도 현장에서 입장이 가능합니다.
리움미술관 상설전시관은 총 4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하 1층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서부터 1층으로 내려가면서 작품을 관람하는 구성입니다. 4층은 고려 청자, 3층은 조선 백자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으며, 오늘은 2층의 서화와 2층의 불교미술을 소개합니다.
4층과 3층 전시실 및 작품에 대한 소개는 아래 지난 포스팅 참고 하세요.
| 마리오 보타의 건축
리움미술관은 장 누벨, 렘 쿨하스 등 세계적인 건축가의 설계로 건축 되었는데요. 오늘 소개하는 M1 전시실은 기하학적인 건축으로 유명한 마리오 보타의 작품입니다.
마리오 보타(Mario Botta)는 스위스의 건축가로, 현대 건축계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하나입니다. 1943년 스위스 멘드리시오(Mendrisio)에서 태어난 보타는 독특하고 강렬한 건축 양식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종종 자연과의 조화를 강조하며, 그의 작품은 대개 대담한 기하학적 형태와 명확한 구조적 표현을 특징이 있는데요. 이곳에서 그의 특징을 만끽 할 수 있습니다.
리움미술관 고미술 전시관을 설계한 마리오 보타의 이야기는 아래에서...
또한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수자 작가의 호흡과 조화를 이뤄 더 묘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 2층 감상과 취향
이곳에서는 조선시대의 글씨와 그림 즉 서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종종 들어봤던 대가들의 작품들을 한 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2층 감상과 취향 서화는 실생활에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자기나, 예배를 위해 만들어진 불교미술품과는 달리 오롯이 감상을 위해 만들어진 예술품이었습니다. 2층에는 우리나라 예술사에 커다란 자취를 남긴 겸재 정선(謙齋 鄭敾),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오원 장승업(吾園 張承業) 등의 작품을 중심으로 조선시대 화단을 대표하는 여러 화가들의 그림과 글씨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고서화는 중국이나 일본 그림에 비해 과장이 적고, 자연스러운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러한 작품을 감상할 때 중요한 기준은 ‘아름다움’과 ‘격조’입니다. 그림의 세부 표현이 서로 잘 어울려 구도상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 화면에 나타난 분위기가 한눈에 들어와 산만하지 않고 일관된 느낌을 주는지, 사물을 묘사한 선과 화면의 여백을 통해 운치 있는 세련미가 표현되었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전통을 토대로 새로운 미감을 보여주는 현대미술 작품을 함께 전시하고 있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어필
조선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정조 (이산)의 친필 입니다. 사도세자와 혜경궁홍씨의 아들로 수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다루어진 조선 22대 왕이기도 합니다. 이산 = 이서진... 뭐 이런 공식도 있고...
조선의 왕인 정조(正祖)의 친필 글씨로 어려서부터 자신을 보좌했던 신하에게 보낸 시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김종수와 정민시에게 이 시를 내려주고, 세상을 떠난 서명선의 집에는 제사를 위한 술을 보내준다고 되어 있다. 이들은 정조가 할아버지 영조의 뒤를 이어 왕을 계승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들로, 정조는 즉위 후 이들과 모임을 만들어 깊게 교류했다. 정조는 서예에 대한 관심이 각별했던 왕으로 여러 서예가들의 작품에 대해 품평을 하기도 하였으며, 본인 자신도 다양한 서체의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특별히 기교를 부리지는 않았으나 자연스러운 필치로 썼으며, 내용도 신하를 아끼는 솔직한 마음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항복 초상
옛날에는 오성과 한음이 아이들에게는 필독서였는데, 요즘은 어떤지... 지금 기준으로는 다소 왕권 중심의 이야기가 아니었나 하네요.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상당한 개구쟁이 친구로 기억 되는데요. 초상에서는 다소 심술많은 어르신으로 보이기도 하네요.
우리에게 ‘오성과 한음’의 일화로 알려져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이항복의 초상화다. 이항복은 임진왜란 때 왕의 피난을 호위하는 등 공적을 세웠으며, 국가에 여러 분쟁을 원만히 해결하여 왕의 신임을 얻었던 인물이다. 이 작품은 이항복이 죽은지 200여 년이 지난 19세기에 9세손인 이유원이 당시 최고의 화가였던 이한철에게 부탁하여 만든 초상화다. 일반적으로 초상화는 사망한 뒤 사당에 걸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시간이 오래되어 손상되면 원본을 없애고 다시 모사하는데, 이 작품 역시 처음 그렸던 초상화를 모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금니산수인물영모도첩
금니화는 17세기에 매우 유행했던 방식으로 검게 물들인 비단에 접착제를 섞은 금 물감을 사용하여 그린 것으로 이러한 그림을 일컬어 금니화(金泥畵)라 부른다.
이 기법은 주로 불교 미술과 관련된 작품에 사용되어 왔으며, 그 독특한 광택과 화려함 덕분에 예로부터 고급스럽고 권위 있는 예술로 여겨지면서 주로 사찰의 장식, 불경의 삽화, 불상이나 보살의 모습을 그리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그 화려함과 영롱한 색감 덕분에 종교적 신성함을 표현하는 데 적합했는데요. 불교미술이 아닌 금니화는 새롭네요.
이 화첩에는 8폭의 산수, 인물 그림과 8폭의 새와 동물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인물화는 모두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 즐기는 인물들을 그렸으며, 새와 동물 역시 평온한 분위기에서 평화롭게 노니고 있다. 이 시기는 임진왜란이 끝나고 매우 어지러웠던 때로, 이 그림처럼 세속을 벗어나 자연을 벗삼아 살고자 하는 주제의 그림이 많이 그려졌다. 크기 않은 화첩으로 되어있지만 꼼꼼한 필치로 공들여 그렸으며, 당시 유행했던 방식과 주제도 잘 나타나 있어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묵란도 대련
조선 제26대 왕인 고종의 아버지로, 고종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면서 흥선대원군이 수렴청정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면서 조선 말기와 일제시대의 혼란스러운 정치상황속에서 함께한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작품입니다.
거친 바위 위 날카롭게 피어난 이하응 특유의 난초가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난초 그림의 대가였던 이하응의 능수능란 묘사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흥선대원군이라는 호칭으로 더욱 잘 알려진 석파 이하응은 조선말 권력의 부침을 겪었던 정치가이기도 했지만, 그림도 잘 그리는 문인 화가였다. 특히 난초 그림을 잘 그려 그가 그린 난초를 호를 따서 ‘석파란(石坡蘭)’이라 따로 부르기도 한다. 이하응의 난초 그림은 잎의 굵고 얇은 변화가 심하고 끝이 송곳처럼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이 특징이다. 이 작품은 두 폭이 한 작품으로 되어 있는 대련으로, 바위 위에 피어난 석란(石蘭)을 그린 것이다.
고대명화첩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유학자, 화가, 작가이며 우리나라 대학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입니다. 결이 고운 비단에 먹으로 그린 이 작품은...
이 화첩은 총 13면으로 그려져 있는데 그 중 그림이 9면, 글씨가 4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꽃과 새를 그린 7점이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반적으로 깨끗하고 섬세한 붓질과 화면의 한 쪽에 치우쳐 소재들을 배치하였는데, 이는 당시 유행했던 방식이었다. 배경을 단순하게 처리하고 여백을 살려 소박하면서도 여유 있는 정서를 화면 가득 표현하여, 조선 중기 화조화의 모습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리움미술관 상설관 2층 서화가 전시된 공간의 분위기는 이렇습니다. 건물 전시공간에 기둥이 없는 것이 특징인데요. 탁 트인 느낌과 함게 눈앞의 작품은 물로 주변 작품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이 돋보이는 곳입니다.
방황자구산수도
조선 말기의 대표적인 화가이면서 영화 취화선의 모델이기도 한 장승업의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장승업의 호취도를 매우 좋아하는데요. 리움미술관 고미술관 전시된 방황자구산수도도 그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조선 말기의 대표 화가였던 장승업의 산수화다. 장승업은 산수, 인물화 뿐만 아니라 동물, 꽃, 새 등 그림의 모든 분야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뛰어난 화가였다. 중국 원나라의 대표 화가인 황공망의 예술세계를 본받아 그린 이 작품은 장승업의 여러 산수화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당시에는 이 그림처럼 좁고 긴 화면이 유행했는데, 그 안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산, 바위, 나무, 인물 등 산수화의 여러 요소를 짜임새 있게 구성하였다. 채색도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수채화를 연상시키는 듯 맑고 깔끔하게 처리하여 화면 전체에 청량한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
《방황자구산수도》(倣黃子久山水圖)는 중국 고대 회화 중 중요한 작품으로, 원대의 유명 화가인 황공망(黃公望, 자는 자구)의 산수화 스타일을 모방한 것입니다. 황공망은 원대의 "사대가" 중 한 명으로, 그의 산수화는 필묵이 뛰어나고 구도가 엄격하며 기세가 웅장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자연 경관의 광활함과 깊이를 표현하는 데 독특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방황자구산수도
심사정은 조선 후기 산수화와 꽃 그림에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던 인물이다. 특히 산수화는 중국의 여러 화풍을 혼합하여 자신만의 개성적인 경지를 만든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화면 상단에 ‘황공망의 필법을 따랐다’라는 제목이 있는데, 황공망은 중국 원나라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하나로 조선의 많은 화가들이 그의 화풍을 따라하고 배우고자 했던 인물이다. 높고 웅장한 산을 그리고 그 아래 자잘한 나무를 그렸는데, 이는 당시 산수화를 그리던 기본 구도였다. 전반적으로 갈색 빛이 도는 옅은 채색을 사용하여 담담한 듯 차분한 표현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경기감영도
이 작품은 인왕산(仁王山)의 연봉(連峰)들 아래로 넓게 펼쳐진 서대문 밖 경기감영(京畿監營) 일대의 풍경을 그린 12폭 병풍입니다.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파노라마 사진 정도가 될까요. 각 폭에 하나하나 요소들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 바로 경기감영도 입니다. 아마도 그러한 이유 등으로 보물로 지정되지 않았을까...
화면 오른쪽 끝의 제1폭에 서대문이 있고, 제5-7폭에 걸쳐서 경기감영이 보인다. 6폭 중앙에 감영의 본관 건물이 보이는데 건물 정면에는 임금의 덕을 베풀고 백성을 교화함을 뜻하는 '선화당(宣化堂)'이란 편액을 달았다. 감영 앞에는 관찰사의 행차 장면이 묘사되어 있고, 주변의 주요 지역과 시정의 여러 풍경도 보여 그림 보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그림에 등장하는 주요 지역의 명칭이 조그맣게 쓰여 있어, 당시 서대문 일대의 모습을 짐작하게 해주는 좋은 자료가 된다.
팔인수묵산수도
이 작품은 유재소(劉在韶)를 비롯하여 박인석(朴寅碩), 김수철(金秀哲), 조중묵(趙重默), 유숙(劉淑), 전기(田琦), 허련(許鍊), 이한철(李漢喆)까지 총 8명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든 작품이 깔끔하고 격조가 있는 남종화(南宗畵)로 제작되었습니다. 이는 김정희가 추구하였던 것이 사의(寫意)를 중시하는 남종화(南宗畵)였으며, 서권기(書卷氣)와 문자향(文字香)을 발할 수 있는 학문을 바탕으로 한 풍부한 정신세계의 추구였기 때문에, 당시 작가들도 이러한 김정희의 뜻에 맞추어 그림을 제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통해 김정희가 당시 조선 말기 화단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잘 알 수 있게 합니다.
고사한일도
큰 정원석과 쌓인 서적을 뒤에 두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문인을 묘사한 그림으로, 선비의 한가로운 일상을 갼략하면서도 정취있게 묘사했습니다. 이재관은 순조, 헌종 연간에 활동했던 궁중화가로 아취있는 문인화풍의 작품을 많이 남겼던 작가입니다. 전반적으로 간결한 구도에 옅은 담채(淡彩)를 사용했는데, 이를 통해 화면 전체에 단아한 정취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선비 뒤에 있는 정원석, 파초 등은 당시 부유층이 정원을 꾸미는 대표적인 사치품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당시 조선사회에 널리 퍼졌던 호화사치풍조가 유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공산무인도
호생관 최북(毫生館 崔北, 1712~1786)은 조선 후기 시 · 서 · 화를 겸비했던 최초의 여항 출신 직업 화가로 대가들의 화풍을 계승 · 변천하여 대담하고 파격적인 자신의 조형양식을 이룩한 조선후기 직업화가로 당시 유행하던 남종문인화를 기본으로 개성적인 필치를 구사했던 화가입니다.
깊은 산속에 빈 정자를 그린 그림으로, 최북 특유의 거칠면서도 자유로운 필치가 돋보입니다. 정자 왼편에는 암벽과 폭포는 거친 필선에 먹과 청색 물감을 섞어 대담하게 표현하였습니다. 화면 상단에는 ‘빈 산에 사람이 없고, 물 흐르며 꽃피네(空山無人, 水流花開)’라는 제발(題跋)이 있어 작품의 주제와 그림의 분위기를 한껏 높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화면 중앙에 작가의 이름과 자(字) ‘七七’을 새긴 인장을 찍었는데, 일반적인 낙관(落款)의 위치를 벗어난 곳에 있어 최북의 자유분방했던 성격도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리움미술관 상설전시관 2층 서화공간입니다.
한 층 아래로 내려가서 마지막 공간인 불교미술 소개입니다. 이곳에서 가장 화려하면서도 독특한 작품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 1층 권위와 신앙, 화려함의 세계
인도에서 발원한 불교는 삼국시대인 4세기에 중국을 거쳐 이 땅에 처음 전래되었습니다. 그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불교는 오랫동안 문화와 미술에 큰 영향을 끼쳐 왔습니다. 신앙의 대상으로서 만들어진 불상에서는 인체를 통해 신성(神性)을 표현해낸 뛰어난 예술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불화는 동시기 중국이나 일본의 불화와 뚜렷이 구별되는데, 섬세한 표현과 독자적인 미감에서 차이를 보여줍니다.
공덕을 쌓기 위해 불교 경전을 손으로 베껴 쓴 사경에서는 당시 사람들의 간절한 발원과 깊은 신앙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함께 전시된 현대 조각은 인간 세계의 번민에서 벗어나 숭고함에 도달하고자 하는 불교미술의 주제와 어우러집니다
불교미술이 화려하게 꽃필 수 있었던 배경으로, 불교 전래 이전부터 발전했던 쇠를 다루는 야금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현세의 삶이 내세로 이어진다고 믿었기에, 무기와 금관을 비롯해 각종 금속제 장식품과 토기들을 무덤 속에 함께 묻었습니다. 화려하게 장식한 큰 칼과 금으로 만든 다양한 장신구들은 당시 지배 세력의 미적 취향과 권위를 잘 보여줍니다. 한편,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일상생활을 위해 만들어진 금속공예품에서는 다채로운 장식 기법과 정성이 돋보이는 세밀한 표현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금동 용두보당
고려시대 청동품으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용두라는 이름으로 학창시절에 교과서에도 나왔던...
사찰에서는 멀리서도 그 존재를 알 수 있도록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았습니다. 이 깃발을 메다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고 이를 양쪽에서 지탱하는 두 기둥을 ‘당간지주(幢竿支柱)’라고 부릅니다.
책이나 도록으로 접했을때는 작은 문화재로 알고 있었는데, 1미터가 넘는 높이를 보입니다.
역시 눈으로 봐야 감동은 배가 되는 듯...
이러한 당간을 작게 만들어 불전(佛殿)에 두기도 했는데, 금동으로 만들어진 이 용두보당이 그러한 예입니다. 아래에는 장방형(長方形)의 2층 기단을 마련하고, 그 위에 2개의 지지대를 세우고 한가운데에 별도로 만든 당간을 세웠습니다. 당간은 8개의 원통을 쌓아 올린 모양을 하고 있으며, 맨 위의 마디에 용의 비늘이 새겨져 있습니다. 당간의 끝은 용의 머리로 장식하였는데, 활달하고 호방한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리움미술관 상설전시관 1층 한 공간은 모두 작은 불상들이 전시되어 있는데요.
금동 여래 입상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중국의 당과 활발히 교류했던 8세기에는 국제적으로 유행했던 불상의 양식이 우리나라에 전해져 수용되었다. 이 불상은 여래의 신체 표현에 보이는 자연스러운 양감이나 광배와 대좌의 형태 등으로 미뤄보아 8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본존은 오른손을 들고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여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의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지었고, 왼손은 아래쪽으로 내려 중생의 소원을 만족시켜준다는 뜻의 여원인(與願印)을 지었다. 우수한 제작기술을 활용해 균형과 조화가 잘 어우러진 불상을 만들어낸 통일신라 장인의 미감을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금동 여래삼존 좌상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는 이 작품처럼 중앙의 부처와 좌우의 보살로 구성된 소형의 삼존불상이 상당수 제작되었다. 이들의 공통점 중 하나로 부처가 앉은 대좌에서 연꽃 줄기가 뻗어 나와 두 보살의 대좌로 연결되는 독특한 표현을 들 수 있다.
중앙의 부처는 오른쪽 어깨가 드러나도록 옷을 입었고, 오른손은 무릎 부근으로 내려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지었다. 뾰족하게 솟아오른 부처의 정수리에는 연꽃 봉우리 모양의 구슬이 올려져 있다. 두 보살은 불교 경전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 두루마리를 두 손으로 잡고 있다.
리움미술관 상설전시관에는 국보 아미타여래삼존도 등 여러 다양한 국보 보물급 불화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지장보살도
지장보살은 지옥의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스스로 지옥에 들어가 한 명도 빠짐없이 구원하고 자신은 마지막으로 지옥을 나오겠다고 맹세한 보살이다. 이 그림에서는 상단에 주인공인 지장보살을 다른 신들보다 크게 묘사하여 그 상징적인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장보살은 머리에 두건을 쓰고, 오른손은 어깨 높이까지 올려 투명한 보주(寶珠)를 든 모습이다. 하단 좌우에는 사방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지키는 네 명의 천왕, 부처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신들인 제석천과 범천, 그리고 지장보살을 곁에서 모시는 무독귀왕과 도명존자를 서로 짝을 지어 배치했다.
불설대보부모은중경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은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가 아니라 중국에서 성립된 경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말 이래 많은 목판본이 제작될 정도로 중시됐다. 이 경전은 부모의 은혜와 자식의 효라는 가치를 강조하기 때문에 유교 중심의 조선사회에서도 지속적으로 인쇄되어 널리 보급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 전시된 판본에는 경문과 함께 모두 21가지의 그림이 실려 있다. 그중 어머니의 은혜를 열 가지로 정리하여 글과 그림으로 나타낸 부분이 특히 잘 알려져 있다. 경전 제목에서는 부모의 은혜라 적었지만 실제로는 어머니의 은혜를 강조한 점이 흥미롭다.
그리고 이어지는 금속 목공예품
금동 금강저ㆍ청동 오고령
금강저는 고대 인도의 무기인 저(杵)에서 유래하였다. 불교미술에서는 신들이 든 무기로 묘사되며, 승려의 수행과 불교 의례에 사용됐던 도구이기도 합니다.
좌우대칭형의 이 금강저는 중앙의 손잡이에 세 개의 둥근 고리[?]가 있는 삼고저(三?杵)이다. 금강령은 종과 금강저를 결합해 만든 것으로 불교의식에서 소리를 내어 불보살을 찬탄하고 중생을 깨우치는 데 사용되었다. 금강령 중 손잡이를 오고저(五?杵) 모양으로 만든 것을 특별히 오고령이라 부른다. 이 오고령의 몸체에는 삿된 것을 제압하기 위해 분노한 표정을 지은 다섯 명의 명왕(明王)이 새겨져 있다.
청동은입사 포류수금문 향완
리움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보물급 금속공예품으로 향완은 향을 살라 불보살에게 향기를 공양하는데 사용됐던 향로의 한 종류입니다. 이 외에도 청동은입사 운룡문 향완 국보급 향완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 향완은 청동의 표면에 홈을 판 후 가느다란 은선을 넣어 만든 아름다운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몸체에는 따뜻한 봄 햇살을 받아 피어난 버드나무 아래에 물오리가 한가로이 헤엄치는 물가의 풍경을 묘사하였고, 연꽃으로 장식한 위패(位牌) 모양 안에는 임금의 만수무강과 모든 중생이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가기를 비는 바람을 새겼다. 몸체에서 다리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윤곽선과 서정적인 물가 풍경에서 고려 장인이 도달한 빼어난 예술적 경지를 엿볼 수 있다.
금동 소탑
고려시대에는 부처를 모신 법당의 내부를 장엄하고, 공덕을 쌓기 위한 목적에서 불탑을 작은 크기로 만드는 일이 유행하였다. 이와 같은 소형 탑들은 평면이 사각형이며, 여러 층을 지닌 목조 누각과 같은 모습이 많다. 이 탑은 기단(基壇)과 5층의 몸체, 상부를 마감한 상륜(相輪)으로 구성되어 있다. 군데군데에 금빛이 남아 있어서 본래는 금동탑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탑신 1층의 네 면에는 난간이 돌려져 있고, 귀퉁이마다 밖을 향해 합장한 인물이 배치되어 있다. 탑신과 지붕의 세부 묘사에서 당시 목조 건축의 구조를 엿볼 수 있다.
금동 대탑
리움미술관 상설전시관 1층 권위와 신앙, 화려함의 세계 공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빼앗은 작품입니다.
규모와 디테일에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는 작품인데요. 역시나 리움이 소장한 국보급 문화재입니다.
불교가 크게 융성했던 고려시대에는 불탑을 조성하여 공덕을 쌓는 일이 널리 행해졌다. 하지만 모든 이가 많은 재화와 인력이 필요한 큰 탑을 만들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그 대신 단단한 금속으로 작은 탑들을 많이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유물은 우리나라에 전래되는 탑 모형 중 가장 크기가 크다. 탑의 표면에는 나무로 지은 탑의 구조를 섬세하게 표현하였고, 부처의 모습을 촘촘히 조각하여 장식하였다. 이 탑은 고려시대 사람들의 깊은 신앙심을 전해주는 동시에, 지금은 사라진 당시 목탑의 모습을 복원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시대 두 점의 보물
금동 빗장 일괄
통일신라시대 만들어진 금동제 자물쇠와 문이나 가구 등을 표면에 달아 자물쇠를 걸었던 고리로이뤄진 세트이다. 전체적으로 자물쇠의 기본적인 기능에 충실한 튼튼한 형태이며, 양 끝은 연꽃 봉오리 모양으로 장식하였다.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표면에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자물쇠가 조각된 사례들이 있어 흥미롭다. 이로 미뤄볼 때 이 자물쇠는 불교 건축물이나 조형물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일괄품인 고리에는 자물쇠와 달리 화려한 문양이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어 기능성과 장식성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금제귀걸이
지금으로부터 1500여년 전에 우리 조상들이 착용한 금으로 만든 귀걸이 입니다.
무슨 도구와 기술로 이렇게 만들었는지...
예나 지금이나 금은 귀한 보물로 당시에도 아무나 사용할 수 없는 값비싼 재료였기 때문에 왕실이나 높은 지위의 귀족들만이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 귀걸이는 금판을 둥글게 말아서 형태를 만든 후 그 표면에 눈으로 확인하기도 어려운 작은 금 알갱이들을 섬세하게 용접하는 방식으로 문양을 표현하였습니다. 이러한 금 알갱이를 이용한 정교한 장식을 누금 기법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둥근 몸체 아래로는 금으로 만든 하트, 나뭇잎, 열매, 공 모양 등 다양한 형태의 장식들을 가는 금실로 연결해서 달아 화려함을 더하고 있는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왼쪽부터...
나전 국화당초문 팔각합 조선, 14-15세기, 나무ㆍ나전, 8.0 x 15.2 x 16.4 cm
나전 국화당초문 화형반 조선,14-15세기, 나무ㆍ나전, 높이 2.0, 지름 15.4cm
나전 국화당초문 붓 조선,14세기, 나무ㆍ나전, 높이 23.5, 폭 1.5cm
유례가 많지 않은 조선 초기의 나전칠기로서 이 시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특히 오엽의 화형반은 매우 드문 예이다. 중앙에는 끝이 둥근 꽃잎을 가진 2중의 국화문을 배치하고, 그 주변에는 꽃잎 끝이 뾰족한 3중의 국화문이 둘러싸고 있다. 테두리에는 자개로 경계선을 두고 별 모양 꽃술과 둥근 꽃잎으로 구성된 국화문 한 줄을 두었다. 국화문의 흐름은 일정한 규칙이 보이지 않고 넝쿨이 서로 꼬인 듯한 특이한 표현이 나타나 있습니다.
은제 과대
직물이나 가죽으로 된 띠의 표면에 사각형의 금속판을 붙여 만든 허리띠를 과대라고 부릅니다.
이 과대는 사각형의 금속판인 과판 34점와 띠고리 1점, 과대에 늘어뜨린 장식품[腰佩] 1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과대는 그 형태가 신라의 고분에서 출토되는 것과 거의 유사하다. 백제나 신라에서는 관직이나 신분에 따라 과대에 매다는 장식품의 재료, 색, 수량에 차이를 두었다. 이에 따라 과대는 옷을 여미기 위한 실용적 기능 보다는 지배계급의 권력과 부를 상징하는 장신구로서 의미를 갖게 되었다.
집모양 토기
저는 이런 토기작품들을 좋아 하는데요. 리움 미술관 상설전시관에서도 몇 점의 토기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투박하지만 순수함과 묘한 매력을 보여주는 가야시대 토기 입니다.
오래전 우리 조상들은 죽은 후에도 생전과 같은 생활이 지속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죽은 이의 무덤에 생전에 쓰던 귀중품이나 다양한 모형 등을 함께 묻는 풍습이 유행했는데 이러한 물건을 명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작품 역시 토기로 만든 집 형태의 모형으로 죽은 이를 위한 명기라 할 수 있다. 무덤 속에서 나온 이러한 모형들은 당시의 집과 건축물이 남아 있지 않은 오늘날 오래 전 조상들의 삶을 엿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여기까지가 리움미술관 M1 상설전시관 2층의 서화와 1층의 불교미술 공예 소장품 소개였습니다.
| 중력의 계단
상설전시관은 나오면 덴마크 출신의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 (Olafur Eliasson)의 중력의 계단 작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자연을 미술관 안으로 들여온 설치작품으로 유명한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은 태양, 물, 이끼, 안개, 비, 무지개와 같은 자연의 현상 그 자체를 다룬다. 작가는 도시의 사람들이 날씨와 자연을 경험하는 방식이 다방면에서 도시에 의해 영향받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지만 제대로 지각하지는 못하는 자연과 매우 유사한 물리적 현상을 정교하고 섬세하게 작품으로 연출한다. 2003년 테이트 모던에 설치한 <날씨 프로젝트>로 명성을 얻었으며, 미술관 공간뿐 아니라 실제 삶의 공간으로까지 그 실험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LED로 형상화된 태양계 행성들은 천장과 전면의 거울로 인해 완결된 구형으로 보이지만 사실 절반 혹은 4분의 1만 실재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거울과 거울에 반영된 관람자의 모습으로 관계의 미학을 형성했던 엘리아슨의 대표작 <날씨 프로젝트>를 환기시키며 관람자를 작품의 세계 속으로 몰입시킨다. 거대한 태양을 비롯한 행성들의 위치는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관람자는 다른 행성에서 우주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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