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현대미술의 거장 '장 뒤뷔페전' 관람후기입니다.
아르브뤼와 아상블라쥬 개념의 창시자로 장 미셀 바스키아 등에게도 영향을 끼친 그의 대표작 67점과 그와 함께한 프랑스 화가 쟈크 발레글레의 작품 32점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소 난해했지만...
| 뒤뷔페 展 요금 및 할인
이번 전시회는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에서 2023년 1월 31일까지 전시예정입니다.
저는 슈퍼얼리버드를 통해 50% 할인 과 추가 프로모션을 통해 8,900원에 관람하고 왔습니다.
| 소마미술관 위치 및 주차
장소는 소마미술관 2관 입니다. 밖에서 보이는 미술관 위치가 아닌 롯데월드 방향 지하에 위치해 있습니다.
소마미술관 주차는 남 4문 주차장이 가장 가까우며, 10분에 600원, 1일 최대 2만원 주차요금이 부과됩니다. (전시회 할인은 없는 듯...)
이번 '뒤뷔페 그리고 발레글레' 전시회는 소마미술과 2관 1~4전시실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전시관 중앙을 기준으로 1, 2관과 3, 4관이 분리되어 있으니 반 만 관람하시고 가시는 실수는 하지 마세묘 ^^
전시장 입구에 위치한 포토존
[G1] 전시실 1
먼저 장 뒤뷔페 연표로 시작합니다. (이미지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L'HOURLOUPE (우를루프)
우를루프는 소리지르고 새과 지저귀고, 늑대가 우는 모습을 의미하는 프랑스어로, 장 뒤뷔페가 만든 조어이면서 그의 대표작이자 시리즈물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뒤뷔페는 우를루프(1962-1974) 연작을 통해 세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그 어떤 요소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평행하고도 기발한 세계를 재창조한다. 그러한 시도는 쿠쿠바자퍼포먼스를 정점으로 끌어올렸고, 조형과 건축을 위해 회화적인 공간을 점차 줄여갔기에 당시로서는 기상천외한도전이었다.
이 연작은 1962년에 그려진 드로잉과 그림으로 시작되었다.
공간을 살리는 요소는 이 작업의 근원적 부분에 기여하며 각 개체와 장소 그리고 상징들 사이에는 연속성이 존재한다.
충만과 공허, 존재와 비존재, 실제 하는 것 또는 상상에 속하는 것의 정당성에 대한불확실한 감정이 담겨 있다. 1962년부터는 그림과 드로잉 작업물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끊임없이 재생되고 반복되는 광란적 그래피즘, 줄무늬가 인상적인 획일적 글쓰기가 그러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미분화된 연속성과 풍부하면서도 고갈되지 않으며 끝없이 움직이는 것의 특성 그의 작업에서 이러한 반전의 중요성을 인식한 그는 팔라조그라씨의 감독의 초청으로 1964년 베니스시에서 첫 시연을 진행하는데 동의했다. 뒤뷔페는 이 미공개 연작의 중요한 부분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에 열광했지만, 이 새로운 작품들이 조화를 깨트릴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관객들이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 그것들은 매우 우연적이고 논쟁적일 수
있고관객에게 이해되지 못한채로 남을 가능성이 다분한 기획이다."
그러나 뒤뷔페는 전시회의 성공으로 안심할 수 있었고 국제 언론의 폭넓은 평가를 받았다.
베니스 전시회에 이어 파리에서 두 개의 공동전시회가 바로 열렸다. 하나는 평면적 그림으로쟌느 부셰 갤러리에서 전시가 진행되었고 다른하나는 구아슈 그림으로 클로드 베르나르 갤러리에서 열렸다. 뒤뷔페는 이 두 전시를 위해 포스터를 제작했고 다른 작업과 마찬가지로 서체 디자인과 드로잉의 관계를 논하며 작업하였다.
| 오디오가이드 및 이어폰 필수
사실 미술사 공부에서도 '앵포르멜'이나 '아상블라주' 부분은 상당히 어려운 미술사조 였는데, 섹션 1의 장 뒤뷔페 작품들도 나에게는 상당히 난해한 작품들이있다. 깜빡하고 이어폰을 가지고 오지 못해서 오디오 가이드(유료)를 듣지 못했는데. 꼭 이어폰 챙기시고 뒤뷔페전 오디오 가이드와 함께 감상하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 쿠쿠자바
상당히 흥미로운 영상이 소개되고 있는데, 내용을 잘 모르니...
1971년에는 애니메이션 그림의 장식으로 사용할 오려낸 그림을 만들기 위해 많은 그림을 그렸다. 이 목적으로 만들어진 뒤뷔페의 드로잉 슬라이드는 대형 판넬에 전시되었고 이는 작가가 원하는 전달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광범위한 프로젝트를 구현하기 위해 뒤뷔페는 1971년부터 파리 근처의 카르투셰리드 방센느에 작업장을 열었다. 그의 조수들은 그곳에서 관객을 위한 무대 실물 장치, 페인트 및 모빌 절단기를 구성한 대형 패널을 작업했다. 또한 뒤뷔페는 다양한 재료로 의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몇주전부터 저는 가면을 만들고 있습니다. 현재 작업 중이기도 한 연극 의상 보완을 위해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내가 우루프를 발전시키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연극용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연극의 모든 장식과 음악, 노래 그리고 가사와 춤 등 모든 것을 직접 구성하고 싶습니다.”
쿠쿠바자(우를루프 축제 또는 환상 무도회라는 타이틀이 붙음)는 이 프로젝트에 주어진 제목이다. 이는 1973년 봄에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그 다음 같은 해가을에 전시에 부여될 제목이었습니다. 세 번째 버전은 FIA.T.의 도움으로 몇 년 후인 1978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소개될 예정이었다.
뒤뷔페는 이 연극을 다음과 같이 여겼다. "회화와 애니메이션이 발전한 것처럼 이것은 단순히 보기만 하는 이미지에 그치지 않고 실제 존재를 받아들이고 그 안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시나리오가 없는 이 연극은 한시간동안 별다른 시작과 마지막 장면 없이 진행된다. 구성 요소(플랫폼 및 의상)들은 매우 천천히 정면으로 이동하여
| 장 뒤뷔페와 자크 발레글레의 공동연표
여기거부터는 뒤뷔페의 작품을 이용한 발레글레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
그에게 삼색볼펜이 아닌 12색 볼펜이 손에 있었다면...
Rencontre avec Jacques Villeglé : 자크빌레클레와의 만남
뒤뷔페가 그의 CNAC에서의 전시를 위해 디자인한 포스터는 훗날 퐁피두 센터가 세워지는 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같은 시기, 자크빌레글레는 동네를 산책하다가장 뒤뷔페의 포스터를 발견했다. 그는 자신의 '비회화속의 회화' 작업에 사용하기 위해 그의 포스터 한장을 떼어냈다. 그는 1975년 2월과 12월 사이에 제작된 40여개의 찢어진 포스터를 제작하며 뒤뷔페의 뒤를 이을 새로운 인물이 된다. 이 포스터는 빌레글레가 10년 후인 1985년에 렌느 도시의 문화회관에서 <우를루프의 귀환>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하게 된다.
빌레글레가 파리 거리에서 우를루프적인 인물을 찾고 있을 때, 뒤뷔페는 '도시의 신화'라는 실험 영화의 대본 작업을 하고 있었다. 빌레글레의 포스터는 영화의 중심축 중 하나가 되며 두 작가의 10년 서신교환의 시작점이 된다.
1974 - Peintures projetées :1974 - 영사된 그림
1974년은 우를루프 연작이 끝나는 해이다. 그는 기념비적 조각프로젝트와 쿠쿠바자쇼의 제작에 몇 년을 바친 후, 1975년 파리 국립현대미술관 CNAC에 전시된 카스틸라 풍경과 삼색 지형 시리즈 작업을 하며 회화 작업으로 돌아간다.
"이 그림으로 [중략] 지난 12년에 걸친 우를루프의 방황이 확실이 끝났다. [중략]
나는 오랫동안 이 허상의 세계를 즐겼지만, 현재는 더욱 단단한 땅으로 복귀하기를 열망한다."
우를루프 연작 중엔 '백조의 노래'라는 작업이 있는데, 이 회화로의 복귀 첫 작품은 그림의 크기 뿐만 아니라 붓질의 '부'로도 굉장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투영에 의한 확대 과정은 이러한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그려진 드로잉으로 다시 나타난다. 쿠쿠바자 플랫폼의 경우 프로세스가 본질적으로 기술적인 것이라면 이는 의도적인 처세이다.
뒤뷔페는 프로젝터(또는 투영기)를 사용하여 조수가 캔버스 작업을 했다고 말했는데, 이때 사용한 프로젝터는 그가 직접 최종 단계에서 캔버스를 칠할 때보다 드로잉에 담긴 펜의 특정 효과를 더욱 충실하게 재현한다. 뒤뷔페는 이 과정을 숨기지 않는데 일부 사람들은 작가의 손으로 직접 빚어진 캔버스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그를 비난하기도 한다.
사용된 기법에 따라 작품이 평가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작품이 궁극적으로 어떠한 지이다. 그 밖의 모든 것들은 작업의 미덕과 아무 상관없는 전문가들의 부차적인 부분과 물신숭배를 보여준다
이번 섹션 작품들의 이름이 모두 OOO 거리 였는데, 전시공간 마지막 사진 한장으로 어떤 의미인지 이해가 되더라는...
바로 이 사진! 작품의 재료는 바로 이렇게 현장 공수~
그때부터 벽보와 정치적 그래피티들이 그의 창작에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들은 프랑스의 동요와 역사, 사회운동, 68혁명과 같은 시대적 혁명, 선거 캠페인은 물론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사회 갈등들을 증언하고 있었다. 벽보들은 일러스트레이션에서 사진으로 잡아찢기에서 스프레이를 이용한 그래피티 낙서로 변했고, 벽보들과 메시지 사이의 엉뚱한 결합으로 인해 반체제적이고 공격적이며 폭력적이면서도 때로는 해학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1980년대부터 사회가 급변하고 벽보들이 자동 생산됐다. 도시 문화의 발달로 벽보들은 변화했으며, 도시에서는 희귀해졌다. 자크 빌레글레는 점점 파리 시내를 벗어나 도시 외곽, 교외 지역, 지방에까지 가서 벽보를 수집해야 했다.
이 즈음은 섹스와 록의 시대였다. 색깔들은 전에 없이 요란하고, 벽보들은 더욱 터무니없어지고, 공격적 폭발적 열광적이었으며 또한 유희적이고 경박했다. 쏟아지는 비디오클립들의 이미지는 텔레비전 스크린을 장악하기 시작했고 뮤직 비디오와 같이 더 즐겁고 피상적이었다.
변화하는 도시, 새로운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초기의 재료들은 약화되고, 찢어진 벽보는 파리의 벽들에서 점점 희귀해져 갔다.
2006년 80세 생일을 맞아 캠페르의 카르티에서 열린 전시회를 기념하여 마지막 캠페인을 진행했다.
여기서의 찢어진 벽보들로 최종 시리즈 <캥페르 사람들의 작업>이 탄생했고, 이 작품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닌 이 예술가의 유일한 자화상"이기도 한 약 40점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후, 자크 빌레글레는 1969년에 개발한 그의 사회정치적 알파벳에 주로 초점을 맞추며, 이를 대형 그래피티나 조각 형태로 축소하였다
쟈크 빌레글레의 공간
벽보 강탈자로서 나의 포부는 회화적이고 시적인 작품을 고안해 내는 것이다.
이는 악천후에 의해서 혹은 미학적 의도 없는 성질 급한 사람들의 제스처에 의해서 우연히 간접적으로 나타난 광고매체를 부각시킴으로써 달성된다.
[중략]
도시의 쓰레기들을 전문 아티스트들이 창조한 형태들과 동등하게 놓는 것이 바로 나의 야망이란 것을 처음부터 의식하고 있었다.
[중략]
나는 내가 찢은 것들이 분산과 발산의 악마, 무엇에나 손대려는 존재인 그 악마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충분히 풍부하고 다양하며 가변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 자크 빌레글레 -
이곳까지가 소마미술관 중앙기존 오른쪽의 제1, 2 전시실의 작품입니다. 다시 중앙을 통과해서 왼쪽 공간으로 이동하면...
아트숍을 지나 3전시실로 입장이 가능합니다. 1, 2전시실 입장할때 남은 티켓을 보여주면 입장이 가능합니다.
3/4 전시실로 이동
1~2관에서 전시된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초창기 뒤뷔페의 작품들이지만 나에게는 조금 더 매력적인 느낌의 작품으로 다가오는 공간...
1942년 이후 우리는
마침내 문제의 핵심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문화 기관에 대한 거대한 불안정화 사업'이었다. 이 프로젝트에서 평범한 사람은 가장
일상적이고 사소한 행동적 측면에서 상징으로 세워졌고, 아름다움과 잘 그리는 것에 대한 상투적인 관습은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삶과 기분이 즉각적으로 발산되는 예술의 이익적 측면에서 다시 문제로 제기되었다.
이렇듯 뒤뷔페의 '물질과 기억' 앨범에 포함된 1944년 석판화 시리즈는 커피 그라인더, 전화의 고통, 코를 푸는 사람 등과 같이 평범한 삶의 주제들을 다룬다.
"만약 우리가 지극히 일상적이고도 본질적인 사소한 행동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중략] 별안간 독창적이고 감동적인 것이 나타날 것이다,”
적나라한(1945)과 같은 작품은 또한 그에게 열망적 동기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가 있다.
“나는 어린아이들의 그림들에 관심이 많았다. 인생 처음으로 새하얀 카드 위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려보았다.”
그는 모나리자(1948) 그림의 표현처럼 상징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당시 흔하던 틀에 박힌 풍으로 그리는 그림에 대한 거부를 솔직하게 표현했다.
이런 느낌의 작품들 너무 좋다는...
40년대 장 뒤뷔페 작품을 보면서 바스키야가 받은 영향이 상상된다는..
1950년대 작품은 그의 재료와 질감에 대한 활발한 관심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뒤뷔페는 이 시기에 향후 작업에 새로운 차원을 선사할 다양한 재료들을 경험하는데, 석판으로 판을 만들고 두꺼운 덩어리를 분쇄하여 풍경을 수직으로 세운 후 하늘의 얇은 부분만 드러내는 <유령들에게 월출 1951>이라는 작품의 풍경을 만듦으로서, 이는 이후 땅과 지형이라 불리는 연작의 시작이 된다. 풍경들은 간혹 퍼티 나이프의 끝으로 긁은 물질의 혼합 재료 속 솟아 있는 인물들로 가득 찼다(각자의 몫, 1956).
뒤뷔페는 또한 두꺼운 반죽으로 그려진 그림들과는 반대로 에나멜페인트라는 산업 물감으로 평평한 그림들을 그리며 새로운 경험을 하는데 때로는 풍경을, 때로는 초록 모자를 쓴 남자(1954) 작품과 같이 인물의 형태를 드러내며, 이 재료 특유의 건조 과정에 강한 흥미를 가졌다
1957년부터 뒤뷔페는 회화를 새롭게 경험하는 단계에 들어간다. 그의 주된 동기는 '큰 크기의 그림들로 땅을 찬양하고 기리는 연작을 실행하는 것' 이었다. 얇게 그려진 하늘은 그림 속 모든 공간을 땅의 한 표면을 연상시키는 질감으로 남기기 위한 장치로 곧 사라지지만, 몇몇의 외로워 보이는 거인들이 조금은 의아하게 느껴질 만큼 작품의 전면(금반지, 1958)에 돌발적으로 보여진다.
장 뒤뷔페 전시회 제3 전시실 끝...
전시실 4관 특별관
그의 비하인드 영상과 그의 작품을 스캔하여 출력한 대형 월을 배경으로 사진촬영할 수 있는 포토존이 준비되어 있다.
| 장 뒤비페 전 아트숍
다른 아트숍에서도 볼 수 이는 타입의 기본적인 기념품들이 준비되어 있음...
카드 긁고 싶은 유니크한 상품은 없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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